2월 중순 직장일기

사람들이 힘들다고 앓는 소리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분명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도 있고 일이 많을 게 보이는데도… 우리는 누가 더 힘들고 고생하는 지, 얼마나 더 안좋은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것 같았다면 여긴 안좋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 같다. 다 좋았고 행복하고 그런 이야기를 별로 안한다. 꽤나 가까운 사람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안나누는 것 같다. 아니면 직장이라는 곳에서 기대되는 바가 긍정적인 사람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식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진짜 덴마크 사람들이 소소한 데에서 오는 행복함에 더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일상의 힘듦이란 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주변에서 앓는 소리를 안하니까 좋다. 왠지 한국에선 다들 앓는 소리를 하니까 그걸 이야기 안하면 여유가 넘쳐서 그런가, 열심히 안사는가 이렇게 생각할까봐 나도 같이 앓는 소리를 해야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대화가 항상 불만 열전으로 이어지곤 했으니까.

직원 한명이 내일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라 저녁에 회사 바에서 맥주를 좀 마시고 밖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초대했다. 회사 꼭대기에 있는 작은 타워에 푸스볼 테이블, 빌리아드 풀, 탁구대와 함께 커피머신이 놓여있고, 이 장소에서 금요일이면 간간히 사람들이 맥주와 스낵을 갖고 와 금요일 바(fredagsbar) 시간을 갖곤 한다. 우리 팀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 하는데, 미리 1-2주 전에 시간 약속을 공지하면 애가 있는 사람들도 가능하면 아이 픽업 등을 배우자와 조율해서 참석한다. 대학원에서도 종종 하곤 했던 fredagsbar이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하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었는데, 탁구 경기를 하면서 몸도 신나게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산뜻해졌다. 4시 반이 넘었는데도 해가 쨍해서 옥상 테라스에 나가서 주변 구경도 하니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고.

저녁식사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퇴직 직원의 아버지 식당에서 이뤄졌다. 아버지가 그리스인, 어머니가 덴마크인인 직원인데, 아버지와 형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제대로 그리스 식당에 가본 적은 없는데, 직원들과 줄 맞춰 자전거 타고가면서 음식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허기도 지고 기대감도 높아졌다. 구글 평점도 꽤나 좋더니만 음식이 실제로 좋았다.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

텔레비전 시리즈,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정치적 갈등상황, 로스킬레페스티발, 영화, 탄자니아 잔지바섬, 스쿼트, 데드리프트, 취직시 인적성검사, DHL 팀 달리기대회 작년 기록, 금년 대회 팀구성 및 합동 트레이닝 등 이것저것 다양한 주제가 왔다갔다 했다. 8명이 간 식사 장소에서 제일 구석 자리에 앉은 탓에 말을 못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식당이 적당히 시끌시끌한데다가 사람들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눠줘서 다행히었다.

딱히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이렇게 소소한 대화가 켜켜이 쌓이다보면 서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친밀해지는 것 같다. 덴마크 사람들은 직장사람을 친구로 안둔다는 말도 있지만, 옌스를 봐도 그렇고 나도 전직장에 따로 만나 밥도 먹고 주말에 초대해 차도 마시고 하는 친구를 두게 된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다. 지금이야 몰라도 나도 한 몇년 다니다보면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말 첫월급이 나오고 나서 오늘은 직장연금 증서가 왔다.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DJØF라는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JØP이라는 팬션펀드에서 왔다. 아마 내가 전체 급여의 8% 정도를 내고 난 후 추가로 납입해야 하는 나머지의 1/3 정도를 더 내고나면 회사에서 나머지를 내는 구조였던 거 같다. 이것보다 더 납부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나는 월급으로 돌려 받기로 했다. 아마 내가 더 납입하는 것으로 하면 회사가 거기에 추가로 불입을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더 받을 수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냥 나는 월급으로 받았다. 옌스랑 같이 주식에 투자하며 돈을 모으고 있으니 그냥 그쪽으로 돌려서 모으려고 한다. 이제 이렇게 연금에 가입도 했으니 해당 연금에서 운영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싶으면 해당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걸어둘 수 있는 권리도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옌스가 해당 펜션을 통해 얻은 건데, 둘다 그런 권리가 생기면 아파트 이사할 때 알아보기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지금이 부동산 시장이 피크같은 상황이어서 집이든 아파트든 사기에 부적절한 것 같아 우리에겐 임대아파트가 최고의 옵션이다. 물론 지금은 우리 아파트가 여러모로 우리에게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어서 최소한 애가 학교갈 때까진 이사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일 안할 땐 그렇게 일이 그렇게 하고 싶고 주말의 가치가 지금같이 크게 느껴지지 않더니 일을 시작하고 나니 주말이 또 참 기다려진다. 사람의 간사함이란. 물론 일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고, 주말에 애도 보고 밀린 정리정돈과 청소, 빨래를 하다보면 주말이 더 힘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주말이 주는 의미가 소중해진달까? 너무 바빠지니 주말에 가족이랑 빵집가서 커피에 빵 먹는거랑 집에서 먹을 거리 장보는 거 외에 돈 쓸 일도 없어져서 강제저축이 늘어나는 것은 참 좋다. 5주년 기념 선물은 도대체 언제 사지? 몰래 선물을 살 시간이 없다. 나도 이제 옌스처럼 선물은 아주 미리미리 기회될 때 사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지난 주 머리를 싸매게했던 한 문제의 챕터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오늘 잡았다. 기분이 좋아서 오늘 저녁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을 거 같아. 옌스가 동화책 읽어주는 게 다 끝났는데도 재잘재잘 떠들던 하나 소리가 잠잠해진 것 보니 둘다 잠이 들었나보다. 이따 옌스가 내 소리에 깨서 나오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지. 아픈 하나 데리고 집에서 일하느라 오늘 많이 고생한 옌스 마사지라도 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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