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

4 thoughts on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1. 존경스러워요! 미국에서 영어로 사는 것만도 저는 힘든데, 덴마크에서 덴마크어로 학교도 잘 다니시고 지금은 직장까지..! 🙂 저도 본받아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 앗. 학교는 영어로 다녔어요. ㅎㅎㅎ 그 기간 중 덴마크어 학원을 다녔고요. 🙂 우리 같이 화이팅 해요!!! 지금도 잘 하고 계시고요. 영주권도 축하드려요!!!

  2. 저도 덴마크 수학 선생님이라는 꿈을 가지고있어용 근데 덴마크어 수학 선생님 직업은 계속해서 유망한가요?! 유망하지 않을꺼라면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겠어요ㅎㅎ

    • 국경없는 포차 보셨나 보네요. 저는 수학 교육이나 중고등학교 교육에 대해 잘 모르니 해당 방송에 나오셨던 캐아스코님 블로그를 참고해보세요.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학선생님이 되기 위해 덴마크어가 필요할 거라 그 부분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 될거라 봅니다. 그것만 아니면 수학선생님이나 과학선생님 등은 유망성이 있을 것 같다 추측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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