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일상 기록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건 11월이지만 데이터 수집에도 시간이 걸렸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12월엔 하나가 보육원 시작하면서 자주 아픈 탓에 집에 머무느라, 나도 같이 아프느라, 또 연말연시 연휴로 가족행사가 있느라 거의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연초까지 수집할 수 있어서 좀 본격적으로 일하나 했는데, 하나의 중이염과 낡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안좋은 궁합으로 인해 시간만 까먹었다. 그나마 위안을 하자면 낡은 컴퓨터를 갖고 씨름하느라 컴퓨터 메모리 칩에 대해, 큰 데이터를 로딩하느라 다양한 데이터 포맷과 그에 따르는 R의 데이터 로딩 함수를 이것 저것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컴퓨터를 새로 사면서 맥에서 Windows로 갈아타는 동안 같은 코딩도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해결하느라 하루동안 씨름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꾸준히 써왔던 R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R과 많이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Spatial data 쪽 분석에서 말이다. 많이 배우는 건 역시 노가다를 통해서인가보다. 오랜 시간을 투여하고 힘들게 익힌 만큼 각인도 더 되는 거랄까? 엄청 삽질한 뒤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같은 결과도 더 짧고 효율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거나 아니면 더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을 볼 때, 그게 탁 머리에 꽂힌다.

대학원 친구들이 서서히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덴마크 친구들만 구하더니 이제 슬슬 비덴마크 친구들도 직업을 구한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들 여기에서 정착하는 것 같아서 좋다. 최근에는 임신한 친구도 생겨서 우리의 두번째 ENRE baby를 맞이할 생각에 나도 들뜬다. 나도 직업을 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간간히 엄습해오긴 하지만, 불안함을 갖는다고 직업이 잘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에 충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저녁에는 덴마크어 학원을 가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으신 분이다. 가르치기도 정말 잘 가르치시고 학생 개인별 수준과 강점, 약점에 맞춰 조언을 따로 해주시는 것도 많다. 숙제는 너무 많지 않아서 바쁜 와중에 수업을 끼워넣기 좋은 편이다. 요즘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바쁜데 그중엔 덴마크어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래도 덴마크어는 미뤄둘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른 것 바쁘다고 미뤄두기엔 항상 가까이 둬야하는 존재… 최대한 일상생활 속에 덴마크어를 녹여야 해서 오늘은 드디어 교수님 면담을 덴마크어로 했다. 그 전엔 슬쩍 인사말을 덴마크어로 해도 지도교수님이 영어로 바꾸시길래, ‘아… 아무래도 역시 영어가 학교 공식 언어라 그렇신가?’ 했었다. 지난번 남편이 덴마크인이라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한다고 흘려뒀던 탓일까? 오늘은 인사 뒤에 따르는 말도 덴마크어로 하시는 거다. 조금 더 집중을 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내 논문에 대해 옌스와 평소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고, 시댁 가족과 친척에게 논문을 설명하느라 덴마크어로 이래저래 이야기한 적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컨텍스트를 정확히 아는 내 논문이고,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나누는 바라 복잡한 뉘앙스를 다룰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덴마크어로 지도를 받기로 했다.

주재원 생활을 빼면 내 덴마크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학교에서의 만족도가 정말 중요한데 그 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교수님들도 정말 좋고, 수평적인 분위기라 질문하고 연락하고 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특히 내 지도교수님은 막상 가까이 지내보니 더 허물없고 열심히 도와주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좋은지. 모든 수업에 대해 100%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내 프로그램에 대해서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100% 망설임 없이 강력히 추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거기에 나라에서 주는 용돈을 받고 등록금도 안내고 학교를 다니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하나 생일이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렸다. 생일 케이크는 집에서 만드는 게 대부분인지라 나도 집에서 만들건데, 스폰지 케이크를 빵집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건 3장 주문해뒀다. 내가 할 건 레이어 사이에 바를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서 레이어 위에 잼과 함께 얹고 마지판을 사서 밀대로 밀어서 얇고 길게 만들어 케이크 사이드를 두르는 것, 케이크 표면에 초콜렛 글레이징 하는 것이다. 바닐라 크림은 어제 하루 하나를 봐주러 보언홀름에서 먼길 와주신 시어머니께서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셨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야 하는 크림이라 오신 김에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시겠다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만들고 보니 카스타드 크림 같은 것이었다. 어째 생크림과 다르다 했는데, 생크림은 맛이 나지 않아서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야 한다셨다. 시어머니의 어머니 레시피라는데, 집집마다 크게 차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의외로 설탕은 별로 안들어가고 단맛은 우유와 계란에서 오는 부분도 많았다.

보육원에 하나 생일이라고 뭘 가져가야 하는데, 생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에 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금요일에 뭘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 빵을 구워가야할 것 같다. 보육원엔 단 건 갖고 가면 안된다고 하니 덴마크 생일에 보편적으로 먹는 우리 모닝빵 같은 걸 구워가야겠다. 흠흠… 믹스 사갖고 이스트랑 버터나 섞어 만들어가야지… 학부모는 역시 바쁘구나. 으흑. 하나 생일 장식도 사야하는데… 한국 부모의 돌잔치에 비하면 별로 하는 일도 없지만, 다 직접 하다보니 손이 가는 일이 좀 있다. 시부모님과 시이모, 이모부님이 와서 축하해주시기로 하셨다. 시누이는 먼 두바이에서 축전만 보내주는 것으로… 아쉬워라… 하나를 엄청 이뻐해주는 고모와 사촌 오누이가 와주면 진짜 좋을텐데… 우리가 4월에 가서 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나가 자주 아픈데 옌스는 직장을 다니니 내가 좀 더 유연하다는 이유로 계속 내 일이 뒤로 밀리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내가 진짜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내가 하나 아픈 날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헉.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있는거냐, 내 학업은 진짜가 아니라는 건데, 대충 해도 되는 거였냐 하니까, 그건 아니란다. 내가 유연해서 하나가 아플 때 내가 다 돌봐야 하면 이건 유연함이 아니라 절대적인 거니 뭔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자기도 아차 싶었던가보다. 그날부로 적극성을 발휘해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일요일 밤에 날아오신 것이다. 평소 하나가 보육원에 갔을 시간 내내 어머니가 애를 돌봐주셨는데, 그 덕분에 일도 진척시킬 수 있었다. 오늘 혹시 하나가 보육원에서 많이 칭얼거려 중간에 픽업해야 할 일이 있을가 싶어 저녁까지 같이 계셔주시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셨는데,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청하기로 했다.

요즘은 천천히 앉아서 뭔가를 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냥 하루하루 바삐 사는지라 상념에 잠길 시간이 없어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나가 크는 모습을 좀 더 차분히 앉아서 기록하고 정리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급히 써두지 않으면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 어수선히 정리도 되지 않지만 휘리릭 써내려간다. 학원을 간 날이라 11시 가까이 되서 집에 돌아오고 나니 눈도 풀리고 머리도 몽롱하다. 그만 덮고 가서 자야겠다. 내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