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아플 때 – 친구가 너무나 고마운 순간

나는 전형적인 서울 깍쟁이다. 물론 살면서 도움 주고 받을 일 없겠냐만은 거의 도움을 요청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 어떻게든 버티거나 부모님에게 손 뻗는 거 외엔 도움 요청하는 일이 거의 없다. 4년전 옌스가 중국에서 옮겨다준 플루에 1차로 아프고 나서 2주 뒤 거의다 나았다가 신종 플루에 2차로 연속 감염되어 40도로 고열이 나고 합병증으로 급성기도염에 걸렸을 때도 응급실 여는 아침 7시에 맞춰 (내가 사는 동네 응급실이 24시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간신히 운전을 해 병원에 갔더랬다.

이번의 독감은 다소 독했던 2주간의 목감기 끝에 찾아왔다. 진짜 힘들었지만 다행히 하나가 보육원을 시작했기에 어떻게 버텼는데, 바이러스성으로 추정되는 소화기관계열 감염이 찾아왔다. 토요일은 옌스와 하나가 고열로 시달리고, 나도 독감으로 힘든 와중에 간신히 애 돌보며 하루를 보냈더니 일요일은 나에게마저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그나마 옌스가 하루 꼬박 침상에 드러누워 앓고나서는 일요일엔 나와 바톤터치하고 하나를 봐줘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옌스가 요리를 못한다. 그간 독감으로 간신히 한끼 요리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 한 것 외에는 빵 등으로 간단히 끼니만 떼우며 살도 빠지고 기력도 떨어져있었는데 내가 완전 누워버리니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토요일, 마침 셸란 섬에 와계신 시어머니께서 시판 이유식과 오븐에 넣어 구워먹을 수 있는 음식 등을 사다주고 가셔서 그걸로 버티나 했는데, 막상 빈속에 구토를 해서 쓸개즙까지 보고 난 상황에 그런 씹어먹는 서양식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옌스에게 죽을 끓여달라고 할 수도 없고. 괜히 쓸데 없이 감정이입해가며 서러워하지 말자는 나였지만, 갑자기 진짜 서러워지는 거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 서러운 마음을 전하고 나니 – 사실 걱정하실까봐 전화 안하고 싶었는데, 극한의 상황이 되니 엄마가 필요하더라. – 마음이 우선 진정이 되었다. 주변에 도움 청할 사람 없냐고, 이럴 때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된다며, 나중에 도움도 주고 그러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안그래도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주말 안그래도 바쁜 거 아는 친군데 연락하기 그래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연락을 했는데,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성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도움들을 주고 갔다.

흰죽과 그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짱아찌, 누룽지 끓여먹으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둥글레 향이 나는 누룽지, 생강차와 꿀과 이에 바로 넣어먹을 수 있게 손질한 레몬, 하나 먹으라고 호박고구마죽까지… 정말 양손 무겁게 양도 듬뿍 준비해왔다. 바로 갖고와서 죽은 아직도 뜨뜻하기까지… 미역 불려놨다며 다음날 보자더니 이튿날에는 미역국과 고추장아찌, 밥까지 갖고 왔다.

흰죽을 받아든 날 부엌에서 내용물과 쪽지를 읽어보고서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아. 이 따뜻한 마음이라니. 참 어떻게 이렇게 정이 넘치나 싶어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녀석인데 이렇게 정이 넘치냐… 싶어서 그냥 고마웠다.

남편은 아플 때 다른 집안일로는 도움을 줄 지언정 요리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뭔가 사다주는 것으로 대체는 해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특히 자기도 아픈 때가 되니 하나도 있는데 나도 부탁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뭔가 사방이 다 막힌 것만 같았다. 엄마 말마따나 어려울 때 서로 품앗이를 할 수 있어야지 아니면 힘들 때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번을 계기로 남을 도울 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일적인 도움 되에 이런 일상생활의 도움은 주는 것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내 소중한 사람들의 어려움에 있어서 이렇게 선뜻 나서야겠다는 배움을 얻어간다.

이건 정말 평생에 갖고갈 고마운 일이다. 고마워, 윤하야.

One thought on “타지에서 아플 때 – 친구가 너무나 고마운 순간

  1. 저도 얼마전에 체했는데 한국에서 먹던 죽이 너무 그립더라구요. 누가 해주지 않아도 시켜먹을 수 있었는데 그런게 없으니ㅠ_ㅠ 결국 직접 해먹었다는..친구분 정성이 정말 대단해요!! 읽는데도 막 감동이 🙂 좋은 분을 곁에 두셨네요ㅎㅎ 가족과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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