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시작

수면교육을 시작한지 나흘째. 첫날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부터 아주 조금씩이지만 쉬워지고 있다. 오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늦은 낮잠을 잔 터라 막상 잠을 잘 시간에 잠이 깨서 그런지 옌스가 수면의식으로써 책읽어주기가 끝났는데도 영 상쾌해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잘 자라고 이야기하고 꺠어있는 하나를 뒤로한 채 옌스는 방을 나왔고, 저글링한다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 사이에 하나는 혼자 놀기, 떠들기, 울기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더니 어느새인가 잠이 들었다. 이와 함께 밤에 깨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밤중 수유도 줄어들었다. 건강방문사의 조언대로 배가 고파서 젖을 찾는게 아니라 습관이었던 것 같다.

11월 들어 학교에는 나가더라도 밤에 같이 하나를 데리고 자는 덕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는데, 학교도 나가고 하나도 스스로 자다보니 아이와 보내는 질적인 시간이 확 떨어졌다. 주말에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을 때 독립적으로 먹으려 하는 것부터 해서 이제 앞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작고 크게 하나가 독립해나가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텐데 그때마다 대견함과 서운함이 섞인 복잡한 경험을 할 것임을 벌써부터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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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부은 하나. 엄마가 가방을 메면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가방을 맡으면 저도 같이 가나요?”

학교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옌스와 다툴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힘에 조금씩 부치기 시작했는지 간혹 다툴 일이 있었는데, 사촌이나 엄마가 해주신 조언도 받아들이기도 한 덕도 있지만 우선 온전한 나의 시간이 길게 확보가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옌스와 같이 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젠 진짜 겉과 속, 나의 가장 좋은 모습과 못난 모습 다 보여준 피를 나눈 것과 다름 없는 가족이 된 것이다. 서로 부딪혀가며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 더 아끼게 되었으니 하나를 갖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지만 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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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동네 도서관 탐방도 간혹 하곤 한다. 잠깐씩 나가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옌스. 육아휴직을 하더니 집안일도 더 돕고… 많이 늘었네.

 

논문이라는 건 듣기만 해도 뭔가 괴물같고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느껴진다. 막상 쓰기 시작하기 전엔 더 그렇다. 사실 교수를 서둘러 만난 건 천천히 여유있게 하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괴물을 작은 단위로 해체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큰 짐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서둘러 시작했다. 나는 나를 잘 못믿기 때문에 교수가 어떻게 논문 지도를 해줄지 물었을 때, 중간 중간 진행상황을 점검하며 채찍질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니논문 쓸 때도 그렇게 하고나니 진행이 수월했고, 결과물을 제때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논문 계약서를, 오늘은 프로젝트 플랜과 dissertation statement를 보냈다. 처음엔 지난 1년동안 무뎌진 뇌를 닦고자 계량경제학 노트와 Economic valuation method와 CBA 노트를 읽어보고 그 다음 논문을 준비하려 했는데, 그렇지 않고 바로 논문에 뛰어들기로 했다. 목적없이 전체 노트를 리뷰하는 것보다 중간중간 필요할 때 리뷰하는게 더 집중하기 좋을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조금씩 발을 딛고 나니 안개에 휩쌓여 있던 아주아주 큰 괴물같던 녀석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 같고 잘 토막을 내 뼈와 살을 발라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프로젝트 플랜을 보내고, midway deliverables는 나중에 업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세부 프로젝트 플랜이 나와야 할 거라서 우선 관련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어보며 본격적인 리서치를 하기로 시작했다. 몇개 논문을 읽어보다보니 빈옥명이라는 East Carolina 대학교 교수님께서 쓰신 연구가 연관성도 높고 정리도 잘 되어있어 읽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연구를 하며 해외 자료를 찾다가 한국인이 쓴 자료가 나에게 큰 등불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서 소소한 놀라움과 기쁨을 얻었다.

옌스가 오늘 좀 조용하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나쁜 스트레스는 아니고, 앞으로 쓸 논문과 향후 진로 방향,  논문 뿐 아니라 덴마크어도 잘 공부해야하고 등등 생각하다 보니 그냥 약간의 긴장감이 돈 것 같다고 답했다. 정말 오랫만에 (거의 1년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해야할 긴 읽을 거리가 생기니 좋은 긴장감이 든다. 주말은 잘 쉬고, 다음주엔 또 다음주의 할 일들을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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