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새벽녘의 어스름으로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따뜻한 글뢱 한잔을 곁들이며 K-pop을 듣고 있다. (글뢱 – Gløgg, 독어 Glühwein (글뤼바인)의 glüh와 같은 어원의 단어 – 은 와인에 계피, 팔각, 카다몸, 오렌지 등을 넣어 뭉근히 끓인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Vin Chaud(뱅 쇼)라고 한다. 가족을 위한 글뢱이라고 와인대신에 사과즙을 넣어 만든 걸 팔길래 사왔다.) Spotify가 장르중의 하나로 K-pop을 따로 구분해놨길래 그 중 그나마 아침에 들어볼 만한 것으로 OST를 골랐는데, 다는 아니라도 들을 만한 것들이 있다. 굳이 아침에 딱히 어울리는 믹스는 아니다. 그냥 다른 거 들어야겠다. 한국분위기 내볼까 했는데 영 실패.
얼마전에 옌스가 왜 K-pop을 안듣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했던 한국가수가 많지 않은데, 전람회, 이적, 토이, 박정현 등 발라드 가수 일부를 좋아했던 게 전부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엔 그나마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음악도 많이 틀어줘서 관심가는 노래가 생기면 듣기도 하고, 애들이 들려준 거 좋으면 찾아 듣기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사람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서양 음악이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게 이미 거의 정해져서 그런지 자꾸 듣다보니 Spotify의 discover가 내 취향을 정말 잘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놀라운 알고리즘.
어제 저녁에 피곤함이 심해서 다리가 아플지경이었다.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오전수업하고 자켓 하나 사느라 쇼핑한 게 전부인데. 10시 반에 침대에 누워 딴짓을 하다가 11시에 불을 껐고, 12시 전에 옌스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뻗어버렸다. 아침엔 또 어찌나 일어나기 힘든지… 깊게 못자고 잘 깨는 나답지 않았다. 특히 태동이 심해져 하나가 뱃속에서 온갖 아크로배틱한 동작들을 해댈 때면 한참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곤 했는데. 중간에 불편해서 한 번 깨고는 그냥 쭉 잤다. 물론 꿈자리는 사나웠지만. 남들이 말하던 임신 후기의 피곤함이 9개월차 들면서 느껴지는 것인가보다.
어제는 겨울파카를 사왔다. 안사고 버티려다가 안에 입는 옷을 조금만 두껍게 입어도 지퍼를 잠글 수 없음에 짜증이 밀려와 정신건강에 좋지 않겠다 싶어 벼르던 옷을 샀다. 앞판에 자크가 양쪽으로 달려있는 긴 패치가 있어 출산 후엔 이 패치를 떼어내 슬림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사실 지금 겨울이라고 해도 유래없이 따뜻하고 비도 안오는 기이한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풍 한파가 몰려올 경우엔 확 추워지기 때문에 그런 날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엔 딱 한번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에 불과하고… 백년에 한번 오는 추위가 온다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실망마저 든다. 겨울은 추워야 하는 법. 그래야 겨울에 마땅히 죽어야 할 양의 병충해의 근원이 죽어 다음해의 나무와 작물이 잘 클 수 있는데.
하늘이 흐려서 언제 해 뜨는지도 모르게 해가 뜨려나보다. 하늘이 밝은 회색으로 변했다. 곧 해가 뜨려나보니 나도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겠다. 오늘은 논문 지도교수와의 첫 면담이 예정되어 있는 날.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 오늘 결혼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때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려나. 행복하게 잘 살 모양이다. 출산교육도 저녁에 예정되어 있으니 뭔가 이벤트가 많은 날이네.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