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뒤죽박죽 장문

부제는 “대학원 생활의 즐거움과 내 정체성”

이번 구술시험은 그간 봤던 시험 중 가장 터프했다. 외부 시험관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며 압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0분 프레젠테이션에 10분 질문일 거라고 당초에 설명을 들었으나 시험 시간은 30분씩 배정되어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는 프레젠테이션 중간마다 질문이 들어와 발표와 질의응답이 뒤섞인 시간이 되었다. 시간 자체도 35분~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을 한 질문이 2개나 될 정도로 내 질문의 답에 또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것 때문에 10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간에 이것저것 교수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러한 질문이 10점을 줄 것인지 12점을 줄 것인지를 보기 위해 한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그룹 멤버를 모두 불러 각각의 개인시험 결과를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가장 방어를 잘 해서 가장 깊게 물어보았다고.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친 그룹멤버들이 질문이 어렵긴했지만 대충 답변은 다 했다며 편하게 생각하라길래 오히려 내가 더 못봤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 2/3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다가 막판에 슬럼프에 빠지며 3주를 많이 놓쳤기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고 따라갔던 게 해당 수업의 에센스를 이해하기엔 중요했었나보다.

지난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영어로 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훈련이 된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사회 경험이 수업시간 중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훈련이 된 것이다.

목요일에 첫 8시간 에세이 시험이 있다. 공부하다가 이렇게 블로깅으로 딴 짓 하고 있는 건데, Political Ecology라고 선택과목이다. 재미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텍스트의 유형과 구성 등도 경제학 및 생태학 저널 텍스트와 너무 달라 학기 내내 힘이 들었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정치과학, 생태학이 결합된 수업인데다가 많은 텍스트가 철학적이라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양도 많고, 어휘도 다르고 엄청 방대하다. 뭔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이렇게 많다 하고 뽐내는 향연의 텍스트 같은 느낌?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 시험은 내 최초의 4점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편히 접근하기로 했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아… 내가 정치과학은 아니었다 하고 변명하기로 하고 말이다. 우선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조금 편해져서 설렁설렁이나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아마 불안해서 정말 공부가 안되었을 것 같다.

이 늦은 나이에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다닌 건 어찌 보면 무모해도 보이지만 참 잘한 일이었다. 동기들과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 정치, 예술, 여행, 스포츠, 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항상 열정에 차있고 동기부여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각각의 국가별로 다른 상황에 대해 듣는 것도 즐겁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농담으로 시시껄렁하게 웃는 것도 좋다. 간혹 힘든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진지해지는 것도 좋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할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고맙기도 하다.

조금 뒤면 엄마가 된 나이지만, 난 사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는 아니다. 아마 정말 엄마다운 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선배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한 지금도 애에 대한 대화보다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 애가 태어나면 여러 궁금증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때문에 내 화제의 중심에 아이라는 요소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세상이 뒤바뀌듯 내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애를 물고빨고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애가 일순위에 딱 등장하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뭘 이야기해도 다 애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해봐, 지금 우리하는 이야기가 이해될 걸?”, “임신해봐, 또 달라질 걸?” 이런 질문과 같이, “애 낳아봐, 지금 생각한 대로 될 거 같아?”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마도 “내 인생이 딱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방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인생에 한가지 정답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가 될 것이다. 하나가 태어나도 나는 하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것이고, 항상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뭔가 삐죽 나와서 튀는 사람이었던 나는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존재는 인격적으로 훈련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기쁨, 괴로움 속에 작고 큰 깨달음을 얻고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하나의 엄마로 뒤바뀌어 모성이 내 인생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의 성공이 내 인생사 목표도 아니고, 그게 나를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다. 난 인간이니 실패도 하겠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의 육아상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내 시행착오에 대해 크게 자책하거나 나를 비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정체성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탈바꿈을 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소소한 변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재탐구해야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탐구가 잘 이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만 명확해지면 남은 것은 실행 뿐이다.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최소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평할 것이 없다. 내가 불평을 엄청 하고 있다면 현재 잘못된 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불평을 엄청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를 낳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어려움 등에 봉착한다 해도 그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내가 노력을 할 동력만 갖고 있고, 실제 노력을 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와닿는다. 예전엔 ‘어차피 대천명이니, 사람이 크게 노력할 거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어찌 보면 ‘평안의 기도’라는 짧은 기도문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 같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요즘 내 머리를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 써서 정신이 없는 길고 산만한 글이 되었지만, 이게 말 그대로 내 요즘 머리속에 계속 흐르고 있는 생각들이다. 모성은 나의 성장의 원천이 되겠지만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리고 더욱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난 이제 갓 36살, 앞으로 살날이 산날보다 훨씬 긴 젊은 사람이니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하고, 그런 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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