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러가지 변화

아침 해가 6시면 중천에 뜬 것 마냥 쨍한 요즘 6시 이전에 이미 눈이 떠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주 화요일, 자명종이 울려서야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잘 못일어나겠던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잠을 설치지 않고 7시간을 내리 잔게 오랫만이었기 때문이다.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공공메일 온 것을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하니 시스템에 내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처음에 외교단 비자로 와서 다른 비자로 바꾸니, 비자 바꾸는 문제부터, 결혼식, 이름 바꾸는 것까지 여러모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어 속을 많이 썩었는데 그래도 이름 바꾸는 문제는 크게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아무리 한국에 등록된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의 편의(구직 활동 중의 편의 등)를 위해 성을 추가하고 내 본래성을 미들네임으로 돌렸다. 그래도 미들네임으로 내 성을 유지했으니까 큰 변화는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을 했지만, 간혹 미들네임을 기재할 공간이 없는 서류 제출시나 신청서 작성시 내 본래 성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 당혹스러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는 우리네 문화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성을 바꾸는 거나 한 가족의 형제 자매가 아버지나 어머니, 조부모 등의 성을 따로 갖는 경우가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성은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평생동안 간직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죄송함도 버무려져서 내가 왜 이 성을 택하는지를 애써 변명하게된다. 묻는 사람이 없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둘째로 치고, 계획하던 행정적 절차가 처리되어 홀가분해진 마음에 옌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나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이 곳에서도 역시 성이 갖는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무게가 느껴짐을 알고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배우자가 내 결정의 무게를 알아준다는 사실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나서 안되겠다 싶어 반바지를 두개 사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많은 사이트에서 말하던 소위 “착상혈”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아침에 느꼈던 그 이상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인생에 있어 나중에 “그게 그래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모르는 것처럼, 그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테스터기를 두세트 사들고 와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희미한 줄이 보였다. 역시…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한번에 이렇게 아기가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막 엄청 기쁘다기 보다는 얼떨떨하고 정말 이게 확실한가 싶은 마음에 놀라움이 가장 지배적인 기분이었다. 예정일이 논문 학기 전 마지막 시험의 바로 다음주라 한달 미룰까 했었는데 그냥 뭐 설마 한번에 되겠느냐 싶어 시작한 임신계획이 예상을 뒤엎고 임신으로 결론이 나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애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학기 중에 애를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생각에 그 전엔 임신을 일찍 하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바로 이달부터는 고령임신이라 안생기면 어쩌나 하고 바로 한달을 간격으로 고민의 주제가 180도 뒤바뀐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 많은 걱정과 달리 계획대로 움직여준 아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오늘부로 두달째에 들어선 거라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잃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을 대비해 기쁨을 기념하고 즐기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옌스가 꽃을 한다발 사들고 집에 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나? 이 꽃은 뭐지? 그냥 사온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빨간 장미. 매번 이러저러한 꽃다발을 사오다가 한번 친구가 거의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의 장미를 내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먼저 선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 아주 진한 분홍장미야~ 빨갛지는 않네.”라고 귀띔해줬더니 그 기회가 남았을 때 빨간 장미를 사온 것이었다.

“왠 꽃이야?” 하며 기뻐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군거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다시한번 축하해!”라며 꽃을 내밀었다. 임신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몰랐는데.

“또 소식이 하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니 “뭔데?”하며 평이하게 물어본다. 불쑥 테스터기를 내밀었더니 이게 무슨 뜻이냔다. “글쎄?”라는 답에 “임신????!!!”하면서 어찌나 놀래던지. 애가 떨어지겠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쓸 것이다.

이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이미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지만, 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다른 의미로 평생에 끊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거야.”라는 말을 불쑥 했다. 항상 장난스럽고 로맨틱하지 않은 나에게 그가 있기에 로맨틱한 감성이 사라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몸조리 잘하고 몸조심하라는 우리 가족과 하던 운동들 그대로 계속 하고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고 술담배만 안하면 된다(술도 간혹 작은 글라스 한잔은 되는 것으로 덴마크 보건당국이 권고사항을 바꿨다며..)는 시댁 가족들. (하루 한잔 커피는 당연히 오케이!) 의사인 시누이는 애들이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아주 무거운 크리스챠니아 자전거에 애들 둘을 태우고 셋째 임신기간 중 내내 데리고 다니고, 출산 때 조차도 자전거 타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활동이 건강한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면서. 승마 등 몇가지 운동만 안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 생기는 유산은 그냥 배아의 유전적 결함에 따른 것이지 그 생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혀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이 나라에도 다양한 가족들이 있기에 순수 유기농 제품만 쓰고 입고 먹는다든지 하며 여러모로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운동에 대해선 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굳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해도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나는 그냥 학교 공부하던대로, 운동 하던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제 이번 여름이 애가 없는 마지막 여름이라며, 이 여름을 불사르겠다는 남편과 벌써 이름을 지어보겠다고 이름 책을 사들고 우리 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벌써부터 즐기고 있다. 입덧만 너무 심하지 않기를 빌며 이 변화의 순간을 아주 잘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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