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났다. 이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정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공부했던 시험기간이었다. 집안을 딱히 어지르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엉덩이 붙잡아 앉혀두고 꾸준히 공부했던 시기. 이번 블록이 시작되고 5주간은 쉬는 시간도 별로 없이 무지막지한 리딩리스트를 클리어해가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게 역화가 되어 돌아와 부활절 휴가를 한주 앞두고 번아웃상태에 돌입했다. 집안일도 대충대충…의욕 저하 상태에 시험은 서서히 다가오고 부활절 휴가는 잘 즐길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짐에 무거운 책들만 괜히 바리바리 싸들고 떠났었다. 비행기 회항으로 휴가 일정이 다 흐트러지니 더더욱 의욕상실…
한국에서 짧은 72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2주간의 수업은 그냥 수업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리딩은 거의 갖다 버리다시피했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게 다. 번아웃이라는 건 모르는 듯한 옌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런 때일수록 너무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더 바닥으로 상태가 떨어지니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신 뭘 하든간에 최소한만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은 얼마나 서핑을 해대는지. 뭔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읽어대곤 했다.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 많은 소비형 컨텐츠들을 중심으로.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말그래도 뉴스 피드에 가까워서 시간 보내며 읽기가 참 좋다. 문제는 이런 컨텐츠 소비가 너무 많아진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혐오감을 감내하면서도 내가 당장 해야 하는 것 (리딩 등)을 미루고 더이상 읽을 것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계속 뉴스거리를 찾아 읽고있는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는 방법을 읽을만큼 내가 살짝 걱정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 봄이 오기 직전 해를 갈구하는 몸이 기력을 다해 그런거였나 싶기도 하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감기까지 걸리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다 바닥을 치더라. 날이 밝아지고, 나무에 순이 오르고, 잔디밭에는 봄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어느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날이 밝아져 눈이 뜨이는 시기가 되자 마치 마술처럼 그간 중독자처럼 관심이 가던 뉴스거리들도 더이상 흥미롭지 않아졌으며 공부에 흥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꼭 이렇게 시험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다행히 초반에 엄청 열심히 해둔 가락과 함께 수업은 빼먹지 않고 (주당 22시간) 가서 열심히 듣고 참여해둔 덕에 시험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라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에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라 그런지, 내가 공부한 것이 충분하긴 한건지, 좋은 성적이 나올지, 그런 생각이 자꾸 머리를 채우니 괜한 조급한 마음과 스트레스가 함께 찾아오더라. 그 마음 다잡아 내려,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고 내가 잘해야 한다는 자만심 내려놓고 한자라도 더 읽자하는 마음으로 애써 공부를 했다.
너무 읽기 싫은 마지막 순간엔 머리에 안들어와도 소리내서 조금 읽다보면 한 한페이지 읽어내려갈 때쯤 되면 긴장감이 조금 안정되면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일상엔 가족, 학교, 덴마크어, 몇안되는 여기 친구 이게 다가 되어버렸다. 생각도 단순해졌고, 어느정도 여기 생활에 적응이 되어버려 차이점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기에 맞춰 변해버렸다는 것이겠지. 오히려 한국가면 놀라게되니,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소비지향적 삶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고.
쓸 거리의 빈곤이 느껴진다는 데에서 뭔가 마음이 묵직했었는데, 이젠 블로그는 좀 쉴까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덜 한다고 부담감 느낄 이유는 없지. 마지막 블록에 집중하고 여름 휴가를 기쁘게 맞이해볼까 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