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그렇게도 오지 않던 크리스마스가 나이가 들어서는 자주 돌아온다. 차이가 있다면 더이상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는다는 것.
남들보다 늦은 시기까지 크리스마스를 믿었는데 그 덕에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잠에 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해서,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외출하신 사이에 불도 끄고 싶은 잠에 빠져버린 것은 우리만 몰랐던 아주 요란한 사건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을 때 밖에서 열지 못하게 하는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그는 게 습관이었는데, 연년생 오빠와 나는 그날도 그렇게 잠그고 잠에 든 것이다. 벨을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고 열쇠로도 열리지 않는 탓에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은 경비원 아저씨가 베란다를 타고 들어와 문을 열어주셨다고 한다. 이웃끼리 가깝게 지내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산타할아버지 오시라고 창문은 열어둔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부모님은 애써 사오신 선물도 우리 머리맡에 두지 못하고 이웃집에서 잠을 청하셨겠지.
어느 해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와서 내 방으로 가시는 순간을 잡아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숨어있으면 모를까 싶어서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순간 빨간 장화가 옆으로 지나다는 것을 보았다. 그 발목을 잡을까 말까 하다가 혹시나 잡으면 선물 안주시고 도망가실까봐 그냥 말았다. 물론 꿈이었겠지.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게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고 생각조차 못했고,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증거가 있었기에 아무리 다른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해도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까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날 부모님께 남들이 그러던데 정말이냐고 여쭤봐 그렇다는 답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기 전까진 쭈욱 그랬다.
이제 충분히 자랐고, 다른 어린이들을 챙겨줘야 해서 이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주신다는 카드를 받았을 때가 4학년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 살 많은 오빠는 나보다 왜 일년이나 선물을 더 주셨는고 하며, 나이 많은 오빠때문에 난 선물이 일년 일찍 끝났다며 억울해했다. 오빠는 일찍 아빠의 독특한 필체로 금방 알아챘다고 했는데 나의 상상을 깨주지 않은 거 보면 참 착한 오빠였다.
의외로 아주 옛 기억도 일부 남아있는데 몇년에 걸친 기억이 다 뒤섞여 있어 어느 해의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두돌 지난 나는 일자 앞머리와 버섯머리를 하고선 노란 튜브형 고무줄을 두르고 천기저귀를 찼는데, 장식장 위에 앉아서 엄마, 오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마 아빠가 찍어주셨겠지. 이 모습은 내 기억이 아니라 꾸준히 본 사진속의 내 모습과 그 당시 내가 주변의 형성이 뒤섞여서 결합된 이차적 기억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를 별달리 챙기지 않았지만, 내 기억이 있는 시작부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던 순간까지는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었고, 매년 그 날을 기다리며 집안을 꾸미는 것을 돕곤 했다. 도움이 안되었다해도 의도는 최소한 돕는 거였으니. 그때는 뒤틀린 꼬임의 트리장식이 유행했는데, 반짝 반짝 빛나던 플라스틱 트리장식과 지금은 램프에나 쓸만한 큰 크기의 유색 꼬마전구 장식을 플라스틱 트리에 열심히 둘렀다. 엄마는 벽에도 금색으로 코팅된 플라스틱으로 Merry Christmas라 쓰여진 리스를 걸어두셨고. 거기엔 브론즈색을 입힌 솔방울 장식과 빨간 크리스마스 나무 열매도 달려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하고 있던 앳된 엄마와 지금 모습에서 시계의 태엽만 거꾸로 감은 듯이 크게 변하지 않은 아빠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밝아진 거리의 모습을 보니 과거 어린 시적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오르며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 집에도 촌스럽게 작게나마 트리장식을 했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꾸몄던 진짜 크리스마스 전나무와 이쁜 장식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작게나마 뭐라도 꾸미니 포근한 느낌이 든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