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기.

“덴마크인마저 여기 날씨를 싫어하던데, 넌 여기 날씨도 괜찮다면서 좋아하는게 참 신기해.”

대학원에서 알게 된 크로아티아 친구가 급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불평하며 말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맑은 날이 많고 흐리고 비가 오더라도 덴마크처럼 강풍을 동반하지 않아 여기처럼 우산을 써도 거센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일은 겪을 수 없으니, 그 곳에서 평생을 살다온 내가 여기 날씨을 좋아할 수 있겠느냐고. 일리가 있다. 델리의 날씨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바가 있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짧은 겨울이 지나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4~5월이 되면 낮기온이 50도에 이르고, 습도가 높은 탓에 건물 밖으로 한발만 내딛으면 숨이 턱 막힌다. 에어콘으로 차갑게 유지된 공기속에 있다가 습하고 뜨거운 공기속으로 움직이면 갑자기 피부와 옷이 축축해지는 느낌과 함께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2~3개월에 불과한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는 오지 않아 땅은 항상 건조하다. 서쪽에서 간간히 오는 강풍은 그 건조한 흙을 훑으며 모래폭풍을 일으키는데, 열악한 건축마감 기술탓에 창문이 꼭 닫히지 않아 18층 아파트 실내까지 모래가 덮치곤 한다. 하루는 들판에서 내 차를 향해 불어오는 모래 바람이 보여 황급히 차창을 닫은 적이 있다. 창문을 다 닫자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모래가 차를 덮쳤는데 순간의 안도감이 지나자마자 짜증이 나를 휘감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들은 더운 기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잎이 작은 활엽수가 주종을 차지하는데 그나마 있는 그 작은 잎사귀에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초록생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겨울 3개월을 제외하고는 밤낮에 상관없이 에어콘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전기세가 비싼 건 차치하고서라도 적정온도를 찾기 어려워 밤에 잘 잘 수 없다는 것이 삶을 더 피곤하게 한다.

그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에 시간은 더디게 갔고 2년반이 10년의 세월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인도에 사는 외국인은 그를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는데, 나는 싫어하는 편에 속해있었고 여행은 몰라도 다시는 이곳에 살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평생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이상으로 인도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기에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내가 아무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란들 더 빨리 흘러갈 시간이 아니라면 그 순간을 잘 살든 못 살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몫인데…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쌍히 여기던 것은 아쉽다. 자주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음식도 접하고,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교류하는 등 그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행하지못하는 것은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라,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라,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나도 다 알아. 아느네 그렇게 하는 게 힘든 것을 어떡해?’ 였다. 같은 상황을 두고 누구는 웃고 넘어갈 수 있고 누구는 마음상할 수 있고,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내가 영향을 받을 때 부처나 예수가 아닌 이상 감정이 동하고 일희일비할 수 있지만 삶의 흐름이 외부에 빈번히 흔들리면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아들로 둔 노모의 이야기처럼 매사를 걱정할지 아니면 기뻐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리 남이 이야기해준다 해서 바뀔 일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을 직접 느끼고나서 실천해가기 시작해야 바뀔 일이다.

해가 짧아지고 비가 자주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 되면, 해가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이 아름다워져서 좋고, 짙은 회색구름 틈새로 살짝 비쳐 보이곤 하는 파란 구멍을 발견했을 때 반가워서 좋다. 저녁이면 깜깜해져서 일찍부터 초를 키고 그 아늑함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비가 올 때면 땅이 촉촉해져서 좋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가 도시의 오염물질을 불어내줘서 좋고, 하늘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몸이 젖어 으슬으슬하면 집이나 실내에 들어와서 몸을 녹일때 느껴지는 부르르하는 감각과 함께 찾아오는 온기가 좋다. 파랗던 나뭇잎이 단풍으로 색을 갈아입으면 그게 아름다워서 좋고, 떨어질 땐 그 아름다움이 좋다. 낙엽이 지고 앙상해진 나무는 수종마다 다른 가지의 구조를 알게 되어 흥미롭고, 나무 끝에 월둥준비를 하며 준비해 둔 새순이 피어날 날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봄이 오면 어느새 연녹색 새순이 터지며 하루가 다르게 짙은 색깔로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놀랍다.

변하는 것은 변화에서 오는 새로움을 찾을 수 있어서, 변하지 안는 것은 그 항상성 때문에 좋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주변환경의 동력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좋은 대로 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끊임없이 불평한다면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느꼈다.

그 일이 얼마나 작고 크냐에 따라 그 변화에 내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와 그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도 그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행함이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고, 그렇게 믿는다.

시험 성적이 나왔는데 평균보다는 잘 했지만 내가 원한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많이 속상했다. 그렇지만 속상한 마음은 그 날 저녁에 느낀 다소간의 울적함으로 충분하다. 이미 나온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 과목 공부에 집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을 잘 내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지금 하는 공부가 나에게 가져올 도전과 그 결과물로 쌓일 지식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면 난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삶의 순간에서 작은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살아내는 일이 소중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Comments

2 comments on “현재를 살기.”
  1. aliceboon says: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 고 볼 수도 있고, 내가 인생에서 어떤 시기에 있는 지에 따라 (좋은 시절 vs. 힘든 시절) 모든 것이 달리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 지금은 해인이가 좋은 기운이 가득한 시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더더욱 좋은 기운 가득가득 키워가길!! 🙂

    1. elskerhimmel says:

      네, 분영언니. 언니 말씀이 맞아요. 힘든 시절이 또 찾아와 같은 것도 부정적으로 보이는 순간이 되면 거기서 조금이나마 이 경험들을 토대로 시선을 바꿔보려 시도라도 할 수 있겠죠. 🙂 지금은 좋은 기운이 꽤나 충만한 시기가 맞아요. 가족과 친구가 멀리있어서 교류가 어렵다는 점만 빼면요. 그게 작지는 않지만 사실, 마음만은 멀지 않다는 생각, 그 대신 옌스와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려해요. 간혹 그 반대의 생각이 커지면 슬픈마음이 많이 들지만, 마냥 우울해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여유가 있어서이겠죠. 언니도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마음의 여유를 가질.수 있는 물리적인 여건도 따라주길(한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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