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했지만 가족, 친척, 친구를 대상으로 결혼을 알리는 정식 파티는 나의 대학원 일정 등의 문제로 1주간의 방학기간 중 하려고, 아직 하지 않았다. 파티를 2주도 채 남기지 않은 오늘, 남편의 친구들과 사촌이 총각파티를 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미리 신랑의 일정을 빈 일정을 확인하고 참석대상자의 연락처를 파악하는데 협조를 이미 요청해왔기에 총각파티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뭘 어떻게 할 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었다. 연락처 파악하느라, 한번도 한 적 없는 옌스의 핸드폰을 해킹할 수밖에 없었는데, 핸드폰 비밀번호는 서로 모르기에, 옌스가 청소기를 돌리던 중 핸드폰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충전기에 꼽아둔 것을 화면이 잠기기 전에 얼른 빼내어 방에 들어가 전화번호부를 신속하게 뒤졌다. 원래는 하객 리스트의 이름을 갖고 덴마크 인터넷 전화번호부를 검색해 찾아보려 했는데, 다들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이름을 지워둔 탓에 실패했고, 항상 이메일을 로그아웃하는 치밀함 덕에 컴퓨터를 뒤지는 것도 소득없이 끝이 나버렸다. 옌스가 방문을 열고 청소하러 들어올까봐, 혹여나 중간에 핸드폰을 찾아헤맬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못 알아챈 듯 했다.
원래는 친구들이 토요일로 계획을 해두었기에 그 날 일정이 없도록 해두었으나, 가장 많은 사람이 되는 날에 잡으려다보니 갑자기 금요일로 일정을 바꾸면서 일이 살짝 꼬였다. 옌스는 금요일 수영을 가려고 했었고, 다음주말에 출장을 가야하는 일정상 이번 주말이 아니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블록도 끝나고 시험까지 시간 조금 있으니, 수영 가지 말고 나랑 밖에 저녁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나 때문에 일정을 바꾸라고 한 적이 없어서 혹시나 눈치챌까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아무런 의심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던 옌스는 오늘 오후 회사에서 퇴근하기 얼마 전, 빨리 퇴근하고 저녁 같이 먹고 주말을 즐기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고 미안해라.
샴페인 한병과 맥주 몇병, 과자 두봉지를 사갖고 온 옌스의 친구(또는 동료)들과 옌스와 참 닮은 옌스의 사촌 세명과 함께 옌스가 올 것을 기다리면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숨막히는 여자상에 대해서도 듣고 (결혼을 앞둔 옌스를 위해 나에게 숨막히는 아내가 되지 말라는 조언. 동감하고, 또 그렇게 쓸데없는데 뺄 힘과 열정도 없다.) 나를 만난지 얼마 안되서 한 친구(이자 직장동료)에게 다가가, 이번엔 뭔가 다르다면서 옌스답지 않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옌스의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듣게 되었다. 옌스가 나를 만나기 전보다 편안해지고, 안정되어 보인다고, 가족들도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쉽게 가족처럼 녹아들어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그래도 가깝게 느껴지던 시가족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 얘기를 듣고, 옌스의 다른 친구(이자 또 동료)가 “옌스가 당신을 만나고서는 예전보다 일찍 퇴근해요. 제일 늦게가던 옌스가 남들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기도 하고, 주말 출근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가정적으로 변하는거죠.”라고 이야기해줬다. 정말 옌스의 주말 출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옌스 없이 옌스의 동료와 사촌과 대화를 한시간 반 가까이 하게되니, 그들이 보는, 내가 보지 못한, 회사에서의, 어린시절의 옌스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더라. 항상 나에게 그는 “나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노력할 뿐 아니라 많이 알고 쌓아가는 사람이다. 회사 동료들은 그가 많은 것을 알고 경험도 풍부하지만 결코 그를 드러내지 않으며, 남이 조언을 구해서 이야기해줄 때,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상대가 잘못하고 있는 것 아는 순간 조차도, “제가 이런이런 것을 해본 결과로는 이렇기에 당신이 한 것과는 다르네요. 이렇게 해보면서 어떤게 더 좋은 결과를 내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물어보는 식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옌스와 같지만, 실례로서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듣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그들이 한 말 중 내가 가장 동의하는 건, 그들이 본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옌스는 내가 본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옌스가 도착할 쯤, 우리는 복도를 통해 공동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리면 그게 옌스인지 아닌지 숨을 죽여 소리를 들었다. 퇴직 후 집에서 혼자 공부하던 6개월동안 옌스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거실 책상에 앉아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옌스가 열쇠를 따기 전 문을 열며 “Velkommen til!(환영합니다!)”를 외쳐온 나는 이제 소리만으로 그게 옌스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 조금만 소리를 듣고도, “아, 저건 옌스가 아니에요”라고 판단하는 나를 보고,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옌스가 집에 도착했을 땐, 평소와 다름없이 “Velkommen til!”로 맞이하며 3번의 키스(이건 한국식 삼세번을 가미한 우리만의 인사 의례이다. 한번은 섭섭하고, 두번은 정이 없으니…)로 그를 맞이했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는 긴 한주가 마침내 끝났다며, 레드와인 한잔 마시면서 나랑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서 거실에 들어섰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하는 황망한 표정의 그를 보며 그의 친구들이 그를 환영해주었고, 샴페인과 맥주를 들며 오늘 뭐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옌스에게 괜한 공포심을 조성했다. 와인 테이스팅 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할 것이라는데, 한명이 미리 레스토랑에 가서 준비를 하고 있단다. 어디로 갈 지, 뭘 할 지 전혀 모르는 옌스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옌스가 그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봤다. 지난번 다른 사촌 결혼식때나, 오늘 같이 온 친구 결혼식에 맞춰 했던 총각파티에서 부어라 마셔라 및 무지막지한 야외활동 등을 기억하니 긴장 되는가보다.
옌스가 새벽 언제 올지 모르니 나는 들어가서 자야겠다. 샴페인 두잔 마시고 약간 헤롱거려 공부하기 어려우니 저녁내내 딴짓만 많이 했다. 내일은 시험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