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수영불능자의 수영 강습기

옌스가 카약을 타기 시작한 것은 이제 거의 만 3년전 일이다. 클럽에서 카약 지도자 과정도 들으면서 주니어 강사로 봉사도 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덴마크어로만 진행되던 옌스네 클럽 과정이 올해부터는 영어로도 진행하기로 하면서 원하기만 한다면 들을 수 있는 여건은 형성되어 있다. 바다에 나가서 육지를 바라보는 일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임은 배를 타고 나가서 봤기에 잘 알고있고, 파도가 거칠 때는 파도와 싸워 노를 져 가는 일이 긴장되지만 두근거리는 멋진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진작에 올해부터 카약클럽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영. 나는 수영을 못한다. 바다의 수온이 한여름에도 20도를 넘지 않고, 봄이나 가을에는 5도 내외로 내려가기에 수영을 하기 위한 여건이 수영장보다 열악하기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해도 추운 바다에서는 더 어렵게 마련이다. 따라서 카약을 홀로 타기 위해서는 600미터를 쉼 없이 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지역 수영장의 초보자를 위한 코스는 항상 초과등록되어 있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연락이 잘 오지 않고, 오더라도 주중 대낮 한가운데 시간이 잡혀있어 등록하지 못하곤 했었다. 알고 보니 대학내 스포츠 시설이 참 저렴하고 좋더라. 수영 초보자 코스도 충분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개설되어 있었고. 물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코스를 들어야 하는지, 그냥 초보자 코스를 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초보자 코스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에.

대학 수영장에는 다이빙 시설이 되어있는데, 그러다보니 물의 깊이가 일반 수영장보다 훨씬 깊다. 그쪽으로 수영을 하면서 깎아지르듯이 깊어지는 바닥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듯 답답해지면서, 그 정도는 크지 않아도 나에게 물공포증이 약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영을 잘 못하니 물이 무서운 것인지,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잘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말이다.

어려서부터 그간 수영에 꾸준히 돈을 투자했지만, 자유형으로 10미터 이상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고, 수영 교육의 기초가 자유형에 있다보니 그를 통과하지 못한 나는 어떤 영법도 터득하지 못했다. 그냥 어쩌다보니 등으로 뜨는 것만 터득했을 뿐… 한두달 다니다 관두기를 여러차례, 항상 똑같은 자유형만 반복했는데, 강습의 순서는 어딜 가나 판에 박힌 듯 짜여져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달랐다. 우선 한명이 가르치는 수업과 달리,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시간씩 배우는 수영코스는 한 명의 전문 코치와, 또 다른 한 명의 아마추어 코치가 짝을 이뤄 가르치고 있다. 덴마크어로 가르치면 나는 세세한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외국인은 나 혼자 뿐이지만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제일 처음 한 것은 입을 벌리고 물에 입의 반 정도가 잠기게끔 한다음 숨을 쉬는 것. 입에 물이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항상 자유형 하면서 고개는 돌려도 숨을 쉬지 못한 이유는 입에 물이 있어서였는데, 입에 물이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다니! 양치질을 하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간 내가 얼마나 물을 무서워하면서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채며 깜짝 놀랐다.

수영에서 중요한 것은 물 속에서 몸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란다.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되자, 우선 배영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균형도 잡아야 하고, 두려움을 뚫고 숨도 쉬어야 한다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 방법을 바꾼 것 같다. 중간중간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유연하게 과정의 구성을 바꿔주니 내가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자기 불신을 뚫고 매주 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호흡의 리듬을 찾지 못해 중간에 차오르는 숨을 참지 못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자, 그 리듬을 찾게 하고자 물속에서 점프하면서 전진하는 식으로 수영은 하지 않고 숨의 리듬을 찾는 것만 집중하게 하였고, 기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여러 항목에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시간까지만 해도 배영을 하면서도 코를 통해 마시게 되는 물이 두려웠는데, 오늘부터 갑자기 배영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지난시간까지도 자유형은 여전히 그놈의 숨을 쉴 때마다 물을 들이키게 되고, 그러다보면 두려움에 빠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곤 했었다.

결국 초급반에서 물을 두려워하고 숨을 잘 못쉬는 4명을 분리해서 얕은 풀에서 가르쳤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물속에서 점프해 돌고래처럼 잠수해 바닥을 짚는 식의 트레이닝을 포함해 한국에서는 해본 적 없는 이러저러한 트레이닝을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보니 얕은 풀에서 12미터 수영이 가능해진게 아닌가! 막판 5분을 남기고 다시 깊은 풀로 돌아가 25미터를 한번에 가는 연습을 했는데, 마지막 5미터 정도를 남기고 한번 일어났다. 20미터 가까이를 한번에 간 것이다. 내 개인 기록이고, 조금 자신이 붙기 시작한다.

흑. 이번 과정이 끝나고 나면 수영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꾸준히 수영하러 다녀야지… 조금 자신이 붙고 나니 수영이 재미있어진다.

2 thoughts on “35년 수영불능자의 수영 강습기

  1. 안녕하세요
    물공포증 수영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았어요
    저는 물이 무섭지만 꼭 수영을 배우고 싶어
    늘지않는 수영에 이글 저글 검색하고 읽어가며 저를 다독옂여주고있어요
    수영 이젠 자유롭게 잘 하시나요

    • 안녕하세요. 수영 자유롭게 잘 하지는 못해요. 중간에 대학원도 너무 바빠지고 덴마크어며 다른 일상에 치여서 관뒀거든요. 그래도 예전처럼 물이 무섭지는 않아요. 이번 겨울에 다시 해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강습은 못받고 혼자 연습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 있다면 그걸 찾아서 들으시길 권해드려요. 접근법 자체가 다르더군요. 뭘 힘들어하는 지에 대한 포인트를 이해해주는 게 저에겐 큰 차이로 다가왔어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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