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큰다.

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큰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 이야기다. 앞글자 하나만 꺼내도 무슨 말씀 하실지 알만큼 반복되었던 이야기들은 잔소리같이 들려서 자꾸 듣기 싫었는데, 거의 세뇌라고 해야하려는지, 그 말들은 마음속과 머릿속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다. 각인이 될만큼 자주 하신 말씀들은 나의 삶의 앞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는 책 한권을 쓰라는 말씀 –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지는 못했지만, 인생의 숙제와 같은 마음의 짐이다. – 을 포함해 몇가지 인생의 화두라며 던져주신 단어들. 또 말씀하시냐며 핀잔을 드리곤 했지만, 그 말씀이 옳으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말씀이었기에 회피하고 싶어서 그랬던 듯 싶다.

내 꿈은 아직도 그 형상을 주무르고 있는 미완의 형태이기에 그 꿈만큼 컸다 아니다를 말하기엔 어렵지만, 그 꿈이 자라온 방향으로 나도 큰 틀에서는 자라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기에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나라이긴 했지만 덴마크에 와서 결혼을 하고 정착의 터를 닦고 있는 나를 보며 그 말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난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었다. 퇴사 후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한국 출장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어려서 해외에서 자란 자기는 항상 해외에서 정체성 고민을 많이 했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다고 했는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누가 뭐가 옳다 그르다는 것을 말해주기 전부터, 난 남녀 양성 불평등에 대해 아주 어려서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사회인야구 감독을 맡고 계셨는데, 거기에 연년생 오빠를 데리고 가시기로 했었다. 한국 나이로 네살 때 이야기니 두돌 지나서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은 나와 부모님 모두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겨서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는데, 왜 오빠는 데려가고 나는 데려가지 않느냐며 거의 지랄을 하다시피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다. 엄마가 나를 안고 계셔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나는데, 부모님은 얘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난리를 치나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나는 항상 오빠를 포함해 남자라는 대상과 꾸준히 경쟁을 했다. 엄마 친구의 자녀가 주로 아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소꿉놀이보다는 공차기를 하고 놀았던 것이 그 대상이 남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남녀의 역할을 어려서부터 구분짓는 것에 알게 모르게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알아주는 왈가닥이었던 나는, 항상 인기있고 이쁜 여자 친구들과는 스스로 비교가 되기도 해서 어차피 그들과 경쟁이 되지 않을 것 그냥 나 하던대로 하자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스럽고 싶은 마음과 그렇기 싫은 마음이 묘하게 섞여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기도 하고.

중학교때 아버지가 에리카 김 – 지금은 BBK 사건의 김경준씨 누나라는 사실로 더 알려져있다. – 이라는 사람이 쓴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책을 사들고 오셨다. 명일동에서 살던 그 시절, 서재에 배를 깔고 누워 하루만에 그 책을 다 읽었고, 뭔가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여권 갖고 있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고, 환전하나 하려해도 여권 뒷면에 환전필이라는 도장과 환전 금액을 적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해외에 다녀온 사촌의 이야기나 친구들의 말이 안 통해 어렵기도 했던 이야기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바다 건너서 저 먼 땅에서의 미지의 삶이 궁금했고, 소설책에 그려진 다른 나라의 삶을 나도 겪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오히려 더 동경하게 되었다.

여성의 성공기를 다룬 그 책에서 나는 나를 그녀의 모습에 투영하며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 경제학, 경영학을 공부해서 미국으로 유학가고, 거기에서 터를 잡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커가는 과정 중 방향을 달리 하게 되었지만, 조금은 늦은 지금 덴마크에 와서 유학을 하고 있으며, 터전을 일구게 된 것은 그 때의 씨앗이 싹을 튼 결과이렸다.

창밖을 내다보면 한국에서 보던 것과 다른 생경한 풍경에 간혹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와있게 되었나?

아무런 행동이 없는 꿈은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해외에 살고 싶은 마음에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직업을 모색하게 되어 이를 일차적으로 이루게 되었고, 이나라 저나라를 노마드처럼 떠도는 생활을 접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 속에 나의 인연을 만나 그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직업도 그 당시의 내 고민을 푸는 방식으로 이동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원하는 방향을 찾아 공부하며 옳은 길을 택했다는 생각과 함께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돈 놓고 돈 먹는 은행에서 일하며 금융권은 내가 일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뭔가 공익적인 가치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과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속에, 유학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살면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공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타인의 사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 주변인의 역할은 부족하고, 내가 열심히 일해봐야 누군가 돈을 더 버는 일은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KOTRA에서 일을 하며 신재생에너지, 환경산업에 대해 자주 관여를 하게 되었는데, 막연하게나마 ‘저런 일을 하면, 일 자체가 사회에 작든 크든 근본적으로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 들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너리즘과 직장내 인간관계 갈등 등으로 직장 생활에 본원적 갈등이 커지고 있던 즈음, 왜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이런 생각에 대한 조언을 구하니, 나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어떤 일에 대한 중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 쉽게 용단을 내리는 결단력은 어머니의 성품을 닮았다. 여러가지 중대한 순간, 마음을 굳게 먹고 결정을 내리고 일을 추진하시던 어머니를 보면서 이를 나도 모르게 배웠거나, 그 피가 내 몸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것은 내가 꿈을 꾸는 만큼 내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원대한 꿈을 꾸지 않는 나이기에 그만큼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늦은 순간은 없다는 것, 내 마음을 뛰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걸 위해 뭐라도 한다면, 설령 거기에 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짧다면 짧은 내 인생 35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가르침이다.

다시 커리어를 쌓아가야 하는 나이지만, 돌아서 왔다는 생각은 지금도 없다. 정해진 길이 없는 넓은 땅에서 내 앞길 구불구불하게 닦아가며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힘들면 힘드는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나처럼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길 개척해나가는 모든 영혼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싶다.

2 thoughts on “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큰다.

  1. 나도 그 책 읽었었어..너랑 비슷하게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어했었지. 너랑 참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 (나는 해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쟁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지만 ^^)

    • 언니도 그 책 읽으셨군요! ㅎㅎㅎ 언니랑 전 참 공통점이 많네요. 🙂 전 전쟁 걱정은 아니고 남녀평등을 찾아서긴 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원하는 것을 얼마만큼 말하고 추구하느냐겠지만요. 그때 부모님은 제가 해외에서 그렇게 살고 싶었는 줄 모르셨다면서, 그런 줄 알았으면 다른 삶을 추구했을지 모르겠다고도 하시더라고요. ㅎㅎㅎ 그럼 또다른 삶이 있었겠지만, 그게 더 낫고 나쁘고의 것은 아닌 그냥 다른 삶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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