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 수학 중간소감 정리

블로그에 글을 쓴 지도 어느새 한달이 넘어간다. 주당 22시간의 학교수업과 7시간의 덴마크어 수업, 이에 따르는 숙제와 읽을거리,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잠을 줄여도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는지라, 흐르는 것을 찬찬히 보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저 흐르는 물결속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균형만 잡고 가는 형국이다.

코펜하겐 대학교의 SCIENCE Faculty는 1년 2학기제가 아닌 4블록제를 택하고 있다. 겨울방학은 단 2주에 불과하고, 여름방학은 한국과 동일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가을에 1주의 방학이 있고, 블록 사이 한주간의 방학이 있지만 그걸 다 합쳐도 한국의 방학엔 비할 수가 없고, 휴일도 부활절 주간 외엔 학기중 휴일도 없으니 학업 강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프로그램엔 2명의 덴마크인 외에는 나머지 18명이 외국인인데, 다들 덴마크 수업 방식에 상당히 놀랄 정도로 학업 강도가 세다.

학교마다, 단대마다, 프로그램마다 커리큘럼이 매우 다양하고 수업의 강도가 매우 다양하기에 이를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SCIENCE Faculty에 있는 다른 프로그램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강도높은 수업과 읽을 거리, 프로젝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 실례로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중도 하차했다. 이는 SCIENCE 단대에 많은 자원이 분배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인문쪽 단대는 자원 부족으로 수업시수가 너무 부족해서 불만인 경우도 있다기에 불평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인으로서 다른 나의 관점이 2년의 학업을 통해 덴마크화되어 이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 전에, 첫번째 블록의 2/3가 끝난 이 시점에서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느낀 바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 주도적인 학습이 없으면 배울 수 없다.

첫 수업일로부터 한달 이전에 이미 읽을 거리와 교재목록, 수업일정이 배포되며, 읽을 거리를 다 읽어왔다는 가정 하에 수업이 진행된다. 한 블록에 한국 기준으로 6학점에 해당하는 과목 2개를 배우게 되기에 한 과목 당 한주에 배우는 양이 한국에서의 배가 된다. 논문을 포함해 읽을 거리를 인터넷으로 사전에 제공하기에 못찾아서 못읽어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읽어왔다는 가정하에 수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토론과 수업 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준비가 부족해지면 긴 수업시간이 다 낭비가 된다. 석사과정에 진학한 사람들은 학업에 뜻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전반적으로 남달라, 다들 열심히 해온다.

  • 학업의 목표가 뚜렷하다.

전공 프로그램 및 각 과목별 학업 목표가 뚜렷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자기가 얻어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전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가 어떤 길을 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수업 이외의 세미나 등을 통해, 아카데믹 라이팅, 프레젠테이션, 데이터베이스 서치 방법 등 학업을 위해 필요한 툴을 사용할 방법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학업 프로그램 중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꾸준한 정보와 교육이 주어진다.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했었을 때 내가 다른 학생 또는 선배와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찾아서 나아가야 했던 길을, 이곳에서는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제공해주니, 이 툴을 사용해 보다 체계적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 교수과 학생간의 거리가 가깝고 교수의 수업 준비가 철저하다.

교수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처음엔 그리도 낯설더니만, 이제는 편하게 이름으로만 부를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 부분을 놀라워한다. 수업에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꾸준히 유도하며, 질문에 명확한 답이 다 제공되지 않는 경우 별도로 연구해 답변을 제공한다. 또한 오래된 노트를 들고와서 수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 학생의 질문과 그 전 시간 진도, 학생들의 이해 수준 등에 따라 수업 슬라이드 변경, 추가자료 제공 등 피드백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된다. 너무 많은게 제공되서 다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교수의 학업준비가 소홀하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오래지 않아 교수가 항목 하나하나 검토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수 연구실로의 방문을 매우 장려한다.

  • 연습시간이 있어서 배운 내용을 수업 내 프로젝트를 통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수업 시간 중 1/3은 연습에 할애된다. 교수는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 그룹의 수업내 프로젝트 수행을 돕는다.

  • 과제를 다 내고 통과해야만 시험을 치룰 수 있고, 과제를 다 통과한 사람은 대부분 시험에 합격한다.

대부분 한 과목당 과제가 2~3개 정도가 주어진다. 이 과제를 모두 제출해서 통과를 해야만 최종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시험은 구두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고, 필기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시험은 모든 가용 자원을 활용해 풀 수 있게 되어있으나, 내용을 모르면 어차피 풀 수 없게 되어 있기에 컨닝은 있을 수가 없다. 과제를 통해 수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6주 동안 2~3개의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항상 한국에서의 중간/기말고사와 같은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에 시험기간이라 특별히 난리칠 이유가 없다. 과제는 대부분 팀 과제 형태로 제출이 되기에 동료들끼리 돕는 문화가 형성된다. 혹여나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한 학기 후와 또 한학기 후로 해서 2번 재시험 기회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이 이해하고 통과를 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주도적 학습이 없이는 통과하기 어렵기에 중도 탈락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평가하기에 교수가 학점 부여에 독점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 줄어든다.

교수의 전권이라는 것은 없다.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시험 채점을 함께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채점을 하는 것이고, 시험의 장소도 학교가 아니라 외부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공정한 성과 평가가 이뤄진다.

대충 정리해보니 이정도인 것 같다. 전체적인 소감을 평가해보자면, 정말 만족스럽다. 예전에는 내가 이것을 배우면 과연 앞으로 이를 써먹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이렇게 2년을 채우고 졸업하면 충분히 이 분야의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회사 생활을 12년 넘게 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무장한 파릇파릇한 젊은 이들과 경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엄청 긴장하고 왔는데, 공부에 꼭 때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공부를 하는 나는 그들과 달리 학업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그리고 또 다른 경험을 토대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있기에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다. 그리고 몇년전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다시 했던 석사과정 중 존경하는 이학배 교수님께 통계학에 대해 꽤나 탄탄한 기반을 쌓았고, 다시한번 경제수학과 미시경제를 공부하면서 오래되었던 지식에 기름칠을 조금이나마 했기에 이 모든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그간 이래저래 쌓아온 일들이 헛된 것은 없다는 생각에 지금 주어진 것도 열심히 하면 다 피가되고 살이될 것이라 생각한다. 늦깎이 공부가 부끄러울 것도 없으며, 늦은 것도 없다. 오히려 이 늦은 시기에 의식주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특권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축제처럼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항상 전문가가 되지 못한 것, 뭔가 내가 이 땅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많은 갈등을 해가며 지난 12년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환경경제학자가 됨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에 남은 2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 초심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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