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에서 시작된 공공부문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

6월부터 여름이 시작이라더니, 정말 그러려나보다. 6월 날씨에 대한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을 믿는다면 말이다. 5분마다 변한다고 하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아니라 기간에 대한 예측이니 대충 맞을 듯 하다. 일중 5~15도의 날씨를 오락가락하는 5월의 봄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엔 유독 춥게 느껴진다. 6월 중엔 드디어 25도의 고온도 맛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덴마크는 날씨에 대해 기상청이 약속했다(DMI lovede)고 표현한다. 기상청이 태풍을 약속했다, 태양을 약속했다고. 그 약속은 상당히 자주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 보면 덴마크의 약속 개념이 약한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덴마크어 수업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유럽 내 덴마크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우리가 행복한 복지국가 덴마크에 갖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해고가 쉬운 나라에 속한다. 실업 복지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flexicurity model), 좋은 직장에서 자리 잘 잡고 일하는, 좋은 경력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이러한 급작스런 해고통보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을 잘 하고 있다가, 덴마크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 컨설턴트는 덴마크를 북유럽의 이탈리아, 그리스로 표현하는데, 웃음이 나오면서도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업부문 정리와 함께 사람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나, 어떤 기한내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잊어버리거나,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고 잊어버리는 일도 꽤나 자주 발생하며, 일정의 지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을 예로 들며, 덴마크는 충분히 신뢰하기엔 의외로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불평은 않는다면서, 지금 구한 곳은 자택근무를 허용해주는데, 두터운 신뢰기반이 받혀주는 덴마크에서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또한 공감하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이 특히 놀라워하는 일은, 앞의 프랑스인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지만, 많은 공사가 지연되고, 공공프로젝트가 허망한 투자로 끝나도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2018년까지 끝나기로 한 프로젝트에 대해 대부분의 덴마크인은 2019년은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했다. 어느샌지 슬그머니 준공시점 안내문에 2019년이 표기되어 있다. (아마 2020년에 끝나려나보다.) 미국에서는 공기가 지연될 경우 막대한 지연배상금이 일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준공을 칼같이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계획은 수정될 수 있다고 보고, 변동되는 현실에 맞춰 합리적으로 프로젝트 기간을 연장한다.

변화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덴마크의 시스템이 있기에 기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기지 않거나 적게 생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간혹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유야무야 봐주는 경우도 생기고,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오랜기간 진행되다가 실패로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탈리아에서 도입하려던 IC4 열차 프로젝트이다. 일명 IC4 스캔들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 2월, DSB(덴마크 국영 철도운영사)는 50억 달러 규모의 도시간 철도용 열차를 EU 공공입찰을 통해 발주했다. 12월, 제일 싼 가격으로 이탈리아의 AnsaldoBreda사가 낙찰을 받게 되고, 2002년 12월까지 납품을 받기로 한다. 원래는 2003년 4월부터 운행을 할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열차에 맞춰 주요 역의 플랫폼은 길이 확장을 위해 확장공사도 마쳤다. 그러나, 2004년으로 납품이 연장되고, 납품된 제품은 전기시스템과 열차용 컴퓨터와 기계장치 시스템의 상호작용에도 문제가 발생되어 프로젝트가 좌초위기에 있었다. 감리기업은 프로젝트 중단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DSB는 매몰비용이 너무 아쉬워, 사실 포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끌고 나갔다. 결국 2007년 10월 4대의 열차가 최초로 납품이 되어 오후스와 올보 구간에서 운영되었으나, 2008년 2월 열차 매연에서 과다하게 발생되는 악취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다.

이는 이 길디 긴 스캔들의 시작일 뿐이라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추가 차량이 납품되고, 문제가 생기고, 또 일부는 운영되었으나, 열차 여러개를 연결하는데 문제가 많아 운영할 수 있는 횟수가 극히 제한되어 효용이 크게 떨어졌다. 중간에 열차에 문제가 자주 생겨 별로 운영도 못해본 열차는 유지보수만 잡아먹는 하마가 되었다. 2013년 9월, 드디어 모든 차량 82대가 납품이 되었고, 현재 일부 구간에서 정기적 운행을 하고 있으나, 2014년 2월에는 해저터널에서 열차가 멈춰 다른 열차로 191명이 구조되는 일도 발생해 신뢰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4년 9월, 덴마크 교통부는 이 열차를 폐기하고 분해해 저속의 지역 열차로 개조해 이용하는 것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위한 조사단을 출범했다. 이는 DSB를 파산하게 만들 수도 있는 대형 스캔들이다.

이처럼 덴마크의 공공조달은 이런 유연한 합리성에 의해 많은 예산낭비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엔 덴마크의 행복, 복지, 녹색 성장, 디자인 등만을 보고 좋은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면서 일반화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뭐 하나만 터지면, 선진국에서는 이러면 책임자 처벌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전국민이 공분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업무의 절차상 과실과 도덕성에 문제만 없었다면 책임자 엄벌, 이런 것은 여기선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약속 문화도, 서양 선진국은 다 약속 잘 지킨다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배웠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공분하는 것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의 상화에 맞는 해답을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발전을 할테니까.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문제점을 이제 인식한 단계로 해답을 찾아가기 전 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항상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좋아지길 원할 땐, 우리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없고 남의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좋은 것은 다른 나쁜 것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갑자기 선거철이 와서(그저께, 6월 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가 났다.)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덴마크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정당간 정책목표가 발표되면서 이곳의 문제가 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도 올해는 날씨 좋은 때 선거하니까, 날씨만 좋아지면 행복해지는 덴마크인들에게도 시끄러운 선거철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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