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겨울 날씨 이야기. 그리고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밖으로.

북유럽의 추운 이미지와 달리 덴마크는 온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추운 나라가 아니다. 해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겨울은 온난하다. 지난 두 번의 겨울은 특별히 따뜻했다곤 하지만, 추워봐야 영하 5도였으며, 추운 해에도 영하 15~20도까지만 내려간다고 한다.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따뜻한 기온은 멕시코 난류가 흐르는 대서양을 서편으로 두고 있는 편서풍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기에 겨울이 크게 따뜻한 건 아니다. 습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이다.

42번째 주(10월 중순, 덴마크에선 주 번호가 매우 중요하다. 방학은 모두 이 주번호를 따르고, 회의 등 일정을 짤 때도 주 번호로 일정을 논하곤 한다.)를 기점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아침에 땅이 젖어있는 가을이 된다. 이때부터 덴마크는 습해져, 잔디 아래는 항상 진창이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뼈가 시린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서울과 제주도의 기후가 크게 다른 것처럼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올라가는 스톡홀름만 해도 겨울이 엄청 춥고 건조하다.)

기온이 높은 겨울은 저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비가 많이 오고 강한 바람이 많이 분다. 기온이 낮은 겨울은 고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건조하고 매우 춥다. 내가 있는 동안은 따뜻한 겨울만 있었는데, 두번의 유래없는 태풍이 왔으며, 폭우와 흔한 강풍으로 참 힘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덴마크의 겨울을 춥게 느끼게 하는 것은 지리멸렬하게 긴 겨울의 시간이다. 11월부터 4월까지가 겨울이니, 6개월, 1년의 절반이다. 특히 3월경부터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식을 접하고 있으면 그 두 달이 영원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태양이다. 12월 21일, 동지를 기점으로 해는 매일 5분씩 길어진다. 한국보다 짧던 일조시간은 춘분을 기점으로 빠르게 길어져간다. 아침 2분 30초, 저녁 2분 30초, 열흘이면 50분이다. 하계일광절약시간(썸머타임)을 실시하는 3월부터는 갑자기 낮이 한시간 더 길어지니 하루하루 일조시간이 길어지는게 피부로 와 닿는다.

5월은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다. 칙칙한 갈색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연두색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10시가 되어도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해가 뜨는 날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덴마크 사람들은 날씨만 좋아도 행복해지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겨울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웃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봄만 되면 쉽게 웃고 인사한다. (덴마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달리,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길에서 보는 얼굴들에,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느냐고 묻는 외국인들이 많다. 무표정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막상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다.)

주말에 날이 화창하면, 시내가 버글거린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해를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좋은 날은 주로 주중에 온다. 오늘 낮은 해가 아주 쨍해서 기온이 17도까지 올랐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태양 아래 있으면 따갑고, 그늘 안에 들어가면 추운 날씨였다. 나도 이 날씨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해변에는 바비큐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고, 노천 카페는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공원에도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산보를 나선 사람으로 가득했다.

해변 잔디밭에서 책을 오래 읽고 싶었지만, 위아래 모두 검정옷을 입고 간 탓에 온 몸이 익어버릴 것 같이 뜨거워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관광객처럼 시내를 돌아다녀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회사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지나다닌 뉘하운(Nyhavn)과 왕립극장(Skuespilhuset, Det kongelige teater)을 지나 코펜하겐 동편에 위치한 캐스틸러 요새(Kastellet)에 도착했다. 항상 이 요새를 둘러 지나갔지 안에 들어가본 적은 없었는데, 관광객처럼 들어가보았다. 군사시설의 느낌이 물씬 났다. 실제로도 안에 국방부 소속 건물이 있어 군인이 눈에 띄곤 했다. 왜 이곳을 안와봤었는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에 들어가면 딴세상이 되듯이 이곳도 갑자기 조용한 딴 곳이 되어버렸다.

실업자로 지내는 요즘, 괜히 쓰는 돈이 아까워 집에 많이 있게 되는데, 역시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나서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다. 이제 앞으로 4개월은 덴마크가 찬란히 빛날 기간이다. 자주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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